등식과 억부원리

운기자평(명리)/중화 2008/06/17 14:34

등식과 억부원리

요즈음은 우리 아들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굴 닮아 가지고 워낙 수학을 잘하니(?), 누군가 옆에서 함께 수학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한 데, 과외비를 감당할 능력이 그렇고... 그래서 방학을 이용하여 아빠와 아들이 함께 중1 수학을 합니다. 그런데 울 아들 왈. 학교 선생님보다 아빠가 더 쉽게 가르치는 것 같데요. ㅋㅋㅋ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수학도 내 눈에는 역의 우주원리로 보입디다.^^

간단히 느낀 점을 정리하면...
상수학은 象(공간)과 數(시간)로 합일된 학문입니다. 즉 수학 역시 象과 數로 크게 구분됩니다. 象의 학문이 기하학으로 2학기에 배우고, 數의 학문이 수리학으로 1학기에 배웁니다. 數라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논리를 표현하는 부호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에 존재하는 1, 2, 3, 4... 등은 실제로 존재하므로 자연수라고 부르며, 양이 존재하면 음이 존재하듯이 그 내면에 반대로 흐르는 흐름이 있는데 이것이 음수로 정수라고 부릅니다. 또 위 자연數 사이(間)에도 수의 이치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有理數라고 하며, 또 그 내면에 존재하는 數를 無理數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數이므로 實數라고 하며 또 그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 虛數가 있습니다. 數의 체계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數를 푸는 가장 큰 원리가 = 等式입니다.
즉 균형을 살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3+x=5 즉 3+x와 5는 서로 균형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위와 같은 균형의 등식은 저울질(權衡)로서 x의 미지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즉 모자라면 扶(+)하고 남으면 抑(-)하는 균형의 저울질로서 x=2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등식 원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주 중심인 북두7성이 권형운동을 하기 때문입니다.(명리마당 억부원리 참조 2000.6.)

그런데 위 등식의 저울질이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상대적인 平의 균형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생명은 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易에서 생명은 위 水의 平에서 비롯되고 합니다. 즉 子水의 平은 생명력이며, 우리는 위 平의 정도를 판단함으로서 運의 생명력인 길흉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 水의 平이 가장 완전하게 이루어진 곳은 지구에서 어디일까요? 바로 바다(海)입니다. 즉 바다(海)의 平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아프리카 적도(火)의 바다에서 생명이 기원되었다는 서양학문과 일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모여있는 바다(淵海)에서 子水의 平을 다루는 학문이 연해자평, 하늘(天)의 물방울(滴) 중심(髓)을 다루는 학문이 적천수라는 원저자의 의도를 살필 수 있습니다.

사실 위 子水의 平이 적용되는 곳은 실로 엄청납니다.
平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하게 왕복운동을 하는 시계추는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 줍니다. 건물을 건축할 때 水로서 平을 잡아 그 높이를 맞추어 건물의 균형을 잡습니다. 위 平을 못 잡으면 균형이 깨져 폭싹 합니다. 군대에서 대포를 사격할 때도 수포의 균형을 이용합니다. 정확한 사격을 하면 위 수포가 양 갈래로 쫙 갈라집니다.(안초 군대 주특기) 서양의술에서 생명이 살아있는지 판단하는 심전도 역시 위 平의 움직임으로 판단합니다. 주역의 爻에서 未光의 이유를 공자는 아직 平이 이루어지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정역에서도 생명은 水土의 平에서 비롯되었다고 적시합니다. 한의학 역시 불급하면 扶하고, 태과하면 抑하는 平의 원리로서 한방 합니다. 6임 역시 高하면 扶하고 低하면 擧함으로써 점단하게 됩니다. 사랑도 결국은 平입니다. 平을 이루지 못한 부부사랑은 깨집니다. 차라리 나처럼 從이 되던지...

그런데 지금의 명리학은 이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균형을 맞추는 平의 抑扶가 아니라, 5개중 1개를 선택하는 助의 抑扶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위 선택의 기준도 자기 멋대로 입니다.(실제없음) 또한 자기 멋대로 억부하는 것이 명리학의 묘미(다양성)라는 사람도 있으니, 이것은 반대로 명리학은 이헌령 비헌령의 학문이라는 얘기입니다. 쩝!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위 둘 중 하나는 짜가입니다. 두가지 모두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짜가는 반드시 몰아내야 합니다.

위 助의 抑扶는 청말, 대만의 근대에 이르러 적천수를 주해한 사람들에 의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원전을 위 平의 각도에서 읽지 못하고, 助의 각도에서 해석함으로서(원리 미흡) 이런 학설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멋대로 흩어지면서 오늘날 전해오게 된 것입니다. 한번 平의 각도에서 원전을 읽어보세요. 핵심부분일수록 얼마나 지들 멋대로 논리 비약을 하고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반대로 연해자평, 적천수, 연해자평 등이 얼마나 일관성 있는지도 보일 것입니다. 학문이란 몇 사람에 의해 진리를 향해 가기도 하지만, 또 몇 사람에 의해 짜가를 향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진리를 향해 갈 것입니다.(사필귀정)

위 근거 없는 助의 抑扶는 현재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일간에서 하나는 격국에서 助의 抑扶를 하는 것입니다.(명리마당 용신취용법 참조 1999.6.) 이렇게 2가지가 공존할 수 있은 이유가 바로 원래 근본은 平의 抑扶였기 때문입니다. 즉 平의 抑扶는 兩神 즉 일간과 격국에 대한 神의 균형입니다. 참고로 이것은 2개의 지축 원리와 전혀 동일합니다.(역학원리마당 神의 우주축 참조) 그런데 위 助의 抑扶는 균형이 아니므로 하나의 神으로만 억부를 합니다. 참고로 적천수에서 抑扶는 一端으로 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큰 눈으로 보면, 결국 平의 억부는 위 2가지 助의 抑扶를 포용할 수도 있게 됩니다.

平의 抑扶는 易의 우주원리인 만큼 쉽고 단순합니다. 그래서 명료합니다. 兩神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만큼, 일간기분으로 상대에 비해 弱하면 신약, 상대보다 强하면 신강입니다.(강약은 상대개념임) 또 그 平의 균형을 잴 수 없을 정도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從格, 平을 이루고 있는 상태가 正格입니다.(두개의 물망울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 표면장력으로 더욱 움츠리지만 그 균형이 깨지면 하나로 從하는 이치임) 모든 용어는 위 平을 기본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약,신강과 종격,정격 등 상대적 개념은 흑백논리를 말하므로 아주 단순 명료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견의 판단이 있을 수 없을 수 없습니다. 또한 털끝 만한 차이도 강약을 판별할(저울질) 수 있게 되므로 미세한 길흉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의 명식에서 강약의 판단이 다를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 희신, 기신이 다르게 판단될 수 없으며, 이것은 결국 동일한 길흉판단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가 뚫리면 나머지는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그 핵심이 비뚤어지면 나머지는 짜 맞추게 됩니다. 참고로 위 平의 抑扶에는 결국 數의 等式原理가 존재하는 만큼 數의 이치로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抑扶를 단순하게 알고리즘화하여 프로그램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것도 아주 쉽고 단순하게...

그런데 이런 걸 꼭 이렇게 얘기해 주어야 하나... 화두를 던져주면 스스로 이런 결론을 이끌어 내실 분들도 계실 텐데... 참으로 아쉽군요. 하기야 갈켜 줘도 듣지 않으려 하고, 또 짜가를 쫒을 망정 유명해지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이니(명리학자의 개그맨化)...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학문은 均衡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허기야 체용이 뭔지도 무르면서 체용 체용하는데...

중요한 얘기인 만큼 잘 쓰려고 했는데, 요즘 집중력이 약해져 두서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얘기는 내가 97년 가입하면서 써야 했던 것인데... 그때는 감히 화두를 꺼내지 못하다가, 요즈음 이런 얘기를 알 듯 모를 듯 조금씩 씁니다. 한마디로 받아드릴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갈켜 주고 욕먹을 수는 없기에... 글씨~ 다음 글은 또 몇 년이 흘러야 할까...

2002년 8월 4일 안초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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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안초이선생 지지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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