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주학의 효용성이 학문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글쓴이: 이현 날짜: 2005.04.02. 15:52:06
원리에 입각하여 동양학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안초님의 의지와 분투에 항상
감명받고 있는 초학자입니다. 제가 무식하기에 용기를 내어 질문을 드립니다.
사주학의 효용성이 학문적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한동석 님은 `우주변화의 원리` 7장 정신론에서 우주정신과 인간정신의
차이를 인정하셨습니다. 그 차이가 우주변화의 원리로 설명이 되면 그것은
이미 차이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형이상이든 형이하이든 예외 조항이 있다면 일단
학문으로 불완전하다는 것 아닐까요?
물론 저는 현시점에서 동양학의 불완전함이나,
계속적인 발전 등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초님의 그간 노력에 좀더 도움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우주정신과 인간정신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易`과 命은 같은 개념을 쓰고
동일한 원리가 적용될지라고 그 외연과 내포의 차이로 인하여,
단지 學과 術의 관계만이 아닌,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 영역이 아닐까요?
마치 현대의 천문학과 사회학,심리학 같이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주학은 한의학과 같으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기에, 사주학의 길흉화복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용태, 음식, 발병, 전이 등 은 한의학적으로는 유용할지라도
사주학에서 규명하고자하는 길흉화복과는 같지만 또다른 영역이라 생각됩니다.
사주학의 준거가 되는 `만세력의 오류와 재정립`은 매우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이러한 오류가 수정된다면 용태, 음식, 발병, 전이 이외의 인간의 길흉화복(사회적 성취와 패망)등을 정확히 추명할 수 있나요?
물론 답은 제 스스로 찾아야 하겠지만, 존경하는 선학인 안초님의 고견을 청합니다.
제목: 운명치유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4.02. 18:09:20
좋은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제가 일에 쫒기에 많은 시간을 할 해 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만족한 답을 드릴지 모르지만, 잠깐의 시간을 내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의 우주
우주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위 우주를 끌고 가는 대표가 바로 천지일월입니다. 따라서 우리 동양학은 천지일월의 연구라고 보아도 됩니다. 운기, 주역, 정역, 한의학, 술수학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동석선생님이 지적해 주셨듯이 각자의 정신이 있습니다. 위 각자의 정신이 어떻게 하나로 움직이는 가하면 바로 감응(공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서로에게 통하여 감응하는 神이 연결되어 하나의 우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 감응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움직이므로 예외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노력과 선택의 부분입니다.
2. 한의학과 술수
한의학은 우월한데 사주는 잡술 아닌가하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사주와 역학은 다르지만 운명을 알고자하는 추명과 추단이 다를 수 없으므로 하나로 묶어 설명합니다.
4상의학의 이제마는 한의계 임에도 불구하고 역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시대상황이 그렇습니다. 역학은 양반이 하는 것이고, 한의학은 중인이 하는 것이므로 한의보다는 역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것이 바뀌어 있습니다.
한의학은 최고의 두뇌가 하고, 역학은 경쟁(입시,삶)에 밀린 사람이 합니다. 이렇게 바뀐 이유는 한마디로 돈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대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학문까지 다를 수 없습니다. 예전에 동일한 분이 가르쳐 주신 것을 활용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전에는 우주를 설명하고, 예측하고, 인간에 적용하여 고치는 자가 지금은 철학자, 술수인, 한의사로 구분되는 것뿐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위 두 계통은 학문적 차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질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역학이 동양학을 이끌어 왔지만, 앞으로는 한의학이 동양학 전반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3. 미래예측
동양학의 고전에는 수많은 곳에 하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위 하늘에 의한 數입니다. 지구에는 위 천지일월의 규칙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위 규칙의 패턴에 따른 선택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의식과 무의식에 의해 선택되지만, 위 패턴을 무시한 선택은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이므로 결국 도태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인간은 하늘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그래서 종교도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좀 더 정리하면 인간의 패턴은 천지일월에 감응하여 절대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의 선택은 내가 상대적으로 만들어 가는 인생일 뿐입니다. 당근 내가 위 패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나의 삶은 달라지겠지요.^^ 저는 이것을 운명치유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경제학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처럼, 최소의 운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쯤이면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2005.4.2.
안초
제목: re: 운명치유 글쓴이: 이현 날짜: 2005.04.02. 18:58:06
정리안된 어리석은 질문에 이렇듯 친절하게 답해주시니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안초님의 글을 보며 공감합니다만, 마지막으로(더이상 때쓰지 않고 제가 답을 스스로 구하겠습니다.) 앞서 오른 안초 님께 다시금 질문 드립니다.
"좀 더 정리하면 인간의 패턴은 천지일월에 감응하여 절대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의 선택은 내가 상대적으로 만들어 가는 인생일 뿐입니다. 당근 내가 위 패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나의 삶은 달라지겠지요.^^ 저는 이것을 운명치유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에서 운명치유, 즉 자아완성과 인간의 궁극적 행복 실현임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동석 님의 표현대로면 천지일월과에 감응(共慾)하기 보다는 私慾에 이끌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사주학이 결정론(운명론)적으로 추명한다 하는데 이것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쉽게 말해 안초님은 소위 쪽집게 예측을 인정하십니까? 제 생각에 안초님은 소위 쪽집게는 인정하지 않으신 답변 같기에 말입니다. 즉 절대적 결정론은 인정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아니면, 결정론을 인정하되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운명치유라 하신건가요?
요즘 사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공부를 어떡 텍스트를 가지고, 어떤 순서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번거로우시겠지만 알려주십시오. 그럼, 더이상 헤매지 않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제목: re: re: 운명치유 글쓴이: 안초 날짜: 2005.04.02. 19:36:37
많은 공부를 하신 분이지만, 조금만 더 공부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듯합니다.
지송하지만 한동석선생님의 "길흉화복을 사주학이 결정론(운명론)적으로 추명한다" 이런 표현 없습니다. 결정, 운명, 숙명은 매우 다른 용어이므로 좀더 숙고하셔야 표현해야 서로 의미가 전달됩니다. 따라서 아직 쪽집게니 뭐니를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권할 사주 책은 원전 이외에는 없습니다. 주석도 추천할 수 없습니다.
제목: re: re: re: 운명치유 글쓴이: 이현 날짜: 2005.04.02. 20:33:18
답변 감사합니다.
안초님의 지적대로 아직은 속단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의 한계는 누구보다도 제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문장이 길어져 주어가 혼동되게 표현한 점 죄송합니다.
"한동석 님의 표현대로면 천지일월과에 감응(共慾)하기 보다는 私慾에 이끌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길흉화복을 사주학이 결정론(운명론)적으로 추명한다 하는데 이것이 가능할까 궁금합니다. "
이문장에서 한동석님의 글은 불완전한 인간들 까지 입니다. 문장 전체의 주어는 `사주학이`고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예를 갖추고 가르침을 구해야 하나, 그렇치 못한점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항상 건강하십시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